욥기

번제로 시작하여 번제로 끝나는 욥기

박대규 집사님 인도

원복음을 주시고 복음의 실체되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다.

욥의 친구들과 욥이 논쟁하고 있다. 율법에 관련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욥과 친구들의 논쟁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중보자는 한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욥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대신 했다. 우리 자체로 죄가 사라지지는 않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사라지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졌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회복해 주신다. 욥도 자기 생일을 저주했다.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저주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른 불평도 많이 한다.

사탄을 이긴 것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그분만이 승리자이시다. 우리의 시선을 욥이나 자신에게 돌리기를 원치 않으신다. 온인류를 대신해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기를 원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이름에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우리 힘으로 절대 안된다.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서’가 중요하다. 포도나무 비유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것들이 가능해진다.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겸손이다.

욥의 친구들이 주장한 것

예를 들어, 욥기 8:1~7. 빌닷은 욥의 자식이 죽은 이유는 욥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청결하고 정직하라고 말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없다.

실로암 못의 비유. 실로암 못이 기혼샘의 물을 받아서 깨끗해 진다. 외부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깨끗해진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빌닷의 말은 인본주의적인 말이다.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말이다.

이들은 오늘날 주장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진실하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이라는 인본주의 주장을 한다. 욥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욥기는 결국, 번제를 통해서 세 친구의 죄가 용서되는 것으로 끝난다.

김영철 목사님 총평

박대규 집사님의 오늘같은 설명을 신학교에서 해 주었으면 좋겠다. 구속사에 관해서 정리가 잘 되어있다. 욥처럼 나의 구속자가 보신다는 사실에 위로 받으시기 바란다.

일단은 박대규 집사님 다 좋았는데, 조금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욥이 예수님의 분신처럼 메시아를 대신하는 모형처럼 보여지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그렇지 않다.

욥기는 성경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다. 창세기와 같은 시대이다. 창세기는 구속사의 청사진을 설명해 놓는 책이다. 욥기도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욥기도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세상이 함께 진행된다. 사탄과의 전쟁이 이어지는데, 전쟁터는 어디냐 결국 사람이다. 사람을 놓고 싸운다는 관점에서 욥기를 보아야 한다.

악인들이 더 많다. 그러나 여인의 후손이 승리한다는 구도로 간다. 창세기의 구도와 동일하다. 사탄이 제시하고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사건이 사람 안에서 벌어진다.

욥이 허용된 범위 안에서 고난이 이어진다. 램넌트의 계보가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욥의 요구는 대속자이다. 우리는 사탄이라고 하면,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두고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사탄이다.

2막에 들어가면 욥과 친구들의 논쟁이 길게 이어진다. 그것이 영적인 전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욥의 친구들이 한 말이 다 맞는 말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선한 사람에게 벌을 내릴 수 있는가? 악인은 축복하실 수 있는냐? 이런 질문에 대해서 답하기 힘들다. 이런 문제때문에 욥이 괴롭다.

욥을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신정론’이다. 니가 하나님이 올바르고 정직하고 공평하고 의롭다고 믿는다면 그런 하나님이 너에게 무자비한 고난을 줄 수 있느냐? 니가 뭔가 숨기는 죄가 있다고 친구들이 힐난한다.

요즘의 강단도 똑같다. 하나님 말씀을 인용해서 근거 없이 적용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는 친구들에게 반박할 수 없다.

욥은 내 육체가 썩어져도 만날 분이 있다. 나를 판단할 분이 있다.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원수가 밖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교회 안에 있다. 교회가 욥의 친구 입장이 되어서 더 옭아맨다.

욥에게 니가 이실직고하라고 요구한다. 그 내용은 율법주의 관점에서 본 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해결은 번제이다. 번제를 얘기한 이유는 욥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얘기한 것이다. 구속사의 핵심은 모든 문제의 해결은 그리스도이다. 너희들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팔복도 너희들이 걱정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천국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분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열매가 열린다. 열매는 바로 ‘의’이다.

마지막에 가서 세 친구를 용서하실 때에도 욥이 그들을 대신해서 번제를 드려준다. 왜 욥이 번제드리는가? 그가 예수님을 상징하지도 않는데.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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