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019년 01월 13일

주제: 설픔이 변하여 기븜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9:22)

부림절.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당하기 전에 반전이 일어나서 하만과 대적을 죽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키는 명절.

에스더에는 하만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손은 있었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보아야 한다. 하만은 사탄의 대리자,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탄의 괴계는 계속되고 있지만,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알려주고 있다.

박균호 장로님

에스더가 짧지만, 지금 표현으로 말하면 연출가가 연출한 것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우연이라고 표현했는데, 내시들의 반란을 고발한 공적이 보류되어 있고 에스더가 왕비로 뽑힌 일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만이 아각 자손으로 등장하고,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활동한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연출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여자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을 저지하려는 사탄의 대결 구도이다.

박경서 장로님

에스더가 나를 위하여 금식하라고 부탁한 것이 인본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성경을 백팔십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아야 한다.

유대인의 대적이라는 말이 여러번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만을 비롯한 사람의 궤계는 사탄의 궤계라고 볼 수 있다.

박균호 장로님

인본주의적 해석에서는 인물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하만민족과 유다민족에 싸우다가 유다민족이 구한 내용이다. 우리가 에스더나 모르드개처럼 살신성인하면서 살아야 믿음이 아니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이 출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셨다가 때맞추어 필요한 일을 진행하셨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연출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박경서 장로님

이면을 보지 못하고 표면만 보면 잘못 해석할 수 있다. 모르드개가 출세한 것만 보게 된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게 된다. 그는 조연이고, 도구이다.

김영철 목사님 총평

짧으니까 짧게 끝난 것 같다. 그러나 짧아서 더 어려울 수 있다. 두 장로님의 해석이 정확했기 때문에 덧붙일 말이 없다.

성경은 네 가지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준비, 예언, 결과, 영향.

이 사건의 배경은 이스라엘 땅이 아니다. 또 귀환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스라엘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난 사건이다. 다니엘도 비슷한 상황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가셨다. 구약의 테두리는 이스라엘 땅인데, 이것은 그 밖에서 일어난 일이다. 원줄기는 비슷하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에 가장 먼저 겪은 전쟁이 아말렉 전쟁이다. 가장 치열한 전쟁이기도 하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태양이 머물기도 했다. 사울 시대에도 이 문제가 연결된다. 사울이 불순종하여 죽이지 않았다.

이 구도가 이스라엘 밖에서도 일어난다.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과 사탄의 나라가 전쟁하는 구도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던 것이다. 승리는 유다민족에게 돌아갔다.

미래에 관한 예고의 성경도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악인이 번성하고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악인이 번성하여 쫓기고 유리한다. 그러나 최후 승리는 반전하게 된다.과거 역사에서 끝나지 않고 미래도 들어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가장 속이 시원한 표현은, 연출하신 분이라는 표현이다. 어느 성경을 보더라도 사람의 행위, 믿음을 보고 평가하면 그것은 점으로 보는 것이 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표현으로 믿음을 앙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안된다.

페르시아가 점령한 지역이 얼마나 넓은지 잘 설명해 주셨다. 인도부터 불가리아까지 아하수에로가 지배했다. 이 사건의 핵심을 추려놓고 보면 모르드개와 하만이다. 이렇게 볼 때, 육적인 부분에서 영적인 부분으로 시각을 돌리게 된다.

가장 오해되고 잘못 이해되는 성경이 에스더이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계신다. 꿈을 주관하시고 필요한 때에 개입하신다. 그렇게 성경을 바라볼 때 성경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다.

룻기를 통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무를자’이다. 에스더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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