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박대규 집사님 진행.
포로귀환 후 이스라엘 사람들
에스라 7장 9절 ‘여호와의 손’이 등장

이방 여인들과 결혼에 관한 개혁

왜 하나님께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셨는가? 성전은 죄사함이 중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남.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를 드려서 피를 뿌리심. 양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아들이심. 실물 교육이 필요한 시대였기 때문에 성전이 필요.
성전이 예수님을 의미하기 때문에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가 진행된다.
우상숭배는 메시아 언약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라가 머리를 뜯을 정도로 이방인들과 구별을 강조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구원계시의 도구이다. 삶으로 성경을 전달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졌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진 것이다. 이방신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거룩한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포로에서 귀환시키셨다.

성전 터에 관한 문제. 다른 곳에서 제사를 지내지 말고,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번제르 드려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 다윗이 희생제사를 지낸 아리우나 타작마당이 성전 터이다. 그곳에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남은자는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던 사람이 아니라 언약 안에 있었던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의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언약 안에 있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구속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역사를 진행하셨다.

성전 재건을 스룹바벨이 주도했다. 스룹바벨이 예수님의 조상. 씨를 보존하신 하나님의 섭리.

박형서 장로님.
4장에서 스룹바벨 성전을 건설할 때 대적자들이 나타났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사마리아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순수성이 문제가 있었다. 현대 교회에서도 복음주의에서 벗어난 번영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일이다.

박대규 집사님.
사마리아 사람들은 순수성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 나를 위해 믿는냐, 하나님을 위해 믿느냐? 하나님을 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성전 건축에 동참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양남림 사모님
구속사를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가 잘 안된다. 수염, 머리털 유대인의 특징?

김영철 목사님
좋은 해설을 많이 해 주셨다. 사실 설명하고 싶은 것을 다들 잘 설명해 주셨다. 제2의 출애굽이라는 바벨로으로부터의 귀환. 애굽에서 탈출하여 정황의 의식을 갖고 하나ᅟ니님 나라의 시민법을 받았다. 그후 하나님 백성으로서 진전했다.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백성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성전을 재건했다. 구약 시대 하나님의 좌소는 성전이다. 성전을 보수한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수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수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 보수 교단이 연합 운동에 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에스겔은 멸망의 삼단계를 말한다. 성전에서 죽은자 1/3, 길가에서 죽은자 1/3, 사로잡혀간 자 1/3. 이렇게 멸망을 당한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성전과 아울러서 성을 보수한다. 하나님 나라의 그림을 다시 그렸다. 1/3이 사로잡힌 자들이다. 그곳에 남겨져 있던 자들. 앗수르의 혼혈 정책으로 혼혈족에 되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 장소에 관해서 질문한다. 예수님은 유대인이고 여인은 사마리아인이었기 때문에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너희는 모르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 유대인이 안다는 것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을 안다는 의미. 제사드리는 장소는 오직 한곳.구원은 한 분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들이 예배 장소를 따로 만들었다는 말은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모르는 것을 예배한다는 말이다.

가인과 아벨 시대에도 남은자가 있다. 남은자 셋에 의해서 복음이 진행된다. 남은자가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셈의 자손에서 아브라함이 나온다. 에스라가 돌아왔을 때 스룹바벨은 성전을 건축했고 에스라는 말씀을 준비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나누어 준비했다. 혼혈족들이 동참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잘못 생각하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같은 구절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 적용한 구절이다. 비슷한 예가 성시화 운동이다. 지역 교단이 초교파로 모여서 연합 집회를 한 적이 있다. 번영주의를 선전하는 일로 전락했다.

현재는 혼혈인을 차별하차는 말이 아니다. 교회를 재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별이다. 성별해야 한다. 성별을 주도한 사람이 에스라이다. 오늘날의 성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WCC 혹은 연합운동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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