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09일 주일 설교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소망

누가복음 02:01~14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우리나라의 새로운 수저계급론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은수저 물고 태어났다)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형되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부유한 집 태생을 이르는 표현’이었지만, 과거 유럽 귀족층에서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대신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던 풍습을 빗댄 말이라고 합니다. 은수저보다 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로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라는 말이 나오더니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실을 스스로 비웃는 의미에서 흙수저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훔친수저라는 용어마저 들립니다. 부모가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 재산을 모은 경우를 말합니다.

온라인상에 등장한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금수저는 자산 20억 이상 또는 연 수입 2억 원 이상인 가구가 속하고 은수저는 자산 10억 원 이상 또는 연 수입 8000만 원 이상 가구, 동수저는 자산 5억 원 이상 또는 연 수입 5500만 원 가구이다.흙수저는 자산 1억 원이다. 흙수저에도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플라스틱 수저라는 새로운 하위 계급으로 분류된다.

수저에 관한 용어가 다양하게 생겨났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도 성장이 멈추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개인의 노력으로 큰 재산을 모으기 어려워졌습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티끌모아 티끌이다”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신분상승 기회였던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부모의 재산과 지위가 대물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한 사회에 관한 두려움이 수저론에 묻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셨습니까? 자녀에게 어떤 수저를 물려주고 싶으십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어떤 여러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수저를 선택하셨겠습니까?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자신이 어떤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날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수저를 선택하셨습니까? 왜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요? 몇 주 있으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탄생의 과정을 하나하나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 과정은 예수님께서 정성스럽게 우레에게 주는 메세지입니다. 께서 선택한 탄생의 과정을 보면서 수저론에 절망하는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서술한 본문은 예수님과는 정반대 위치에 있는 아구스도 황제의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황제니까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호적을 정리하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모가 베들레햄으로 내려가야 했고, 결과적으로 메시아가 베들레햄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로마 황제는 자기 마음대로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구스도 황제는 세계사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라고 불립니다. 로마 제국 최초의 황제라고 나중에 불리지만, 스스로는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양아버지인 카이사르가 로마를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로 변화하려고 하다가 암살당했기 때문입니다. 신임하던 부하 부루투스가 암살에 가담하자 “부루투스 너마저도”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그에 따라서 전쟁과 반란, 긴급 사태가 잦아지자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황제정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시민의 평등한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황제정치를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두 주장 모두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그런 걸 우리가 알아서 뭐합니까?”라고 질문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네, 맞습니다. 굳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사회 갈등에 대해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아야한다는 점입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마저 죽게 만들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단 몇 분 동안도 흥미를 끌지 못하는 주제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를 죽인 부루투스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무엇 때문에 카이사르를 죽였느냐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 입니다. 내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카이사르보다 로마 시민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로마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살아서 로마인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원합니까. 카아사르가 죽음으로써 로마 시민들이 자유를 가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나는 카이사르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지혜롭고 용감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 위에 군림해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죽여야 했습니다.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하략)” – 부루투스의 연설(카이사르 살해 변명)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념 갈등은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가 시대가 지나면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도 시간이 흐르면 색깔이 바래는 물감처럼 중요성을 잃어갑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 가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낭만적으로만 그려져서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매우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어렸을 때 겪은 일일수록 인생에 큰 영향을 줍니다.

방송인 이영자 씨의 연설을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냄새를 맡는 습관이 있답니다. 먹을 것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이유가 아닙니다. 어렸을 때 집이 생선가게를 했는데, 자기 몸에서 생선냄새가 날까봐 부끄러웠답니다. 다른 아이들이 냄새 맡는 표정을 짓거나 냄새 관련 말만해도 지레 창피함을 느꼈답니다.

예수님은 목동들의 축하를 받으셨습니다. 이 사실도 낭만적으로만 그려지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얕잡아 보일 수 있는 사건입니다. 당시 목동들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매우 낮았고, 반은 도둑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말구유에 뉘였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말구유에서 난 아이’라고 놀렸다면, 장난으로 말하는 거지만, 당사자인 아이는 매우 큰 상처를 받지 않을까요?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정신에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목동들의 축하를 받으셨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근조 화환 리본에 보낸 사람의 직위와 이름이 써있는 것을 봅니다. 유명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보낸 화환이 죽 늘어서 있으면 흥성한 집안으로 보입니다. 점포를 오픈했을 때도 비슷합니다. 높은 분들이 보낸 화분이 많으면 인맥이 넓은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누가 조문을 하고, 축하를 했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지위도 간접적으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낮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셨습니다. 이건 오늘날로 생각하면, 장례식장에 조문 화환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점포를 오픈했는데 화분을 보낸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 상황을 겪으셔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그런 상황을 스스로 선택해서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선택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오늘날 굶어죽을만큼 돈이 없는 집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흙수저로 태어났다는 사회적인 낙인을 더 부끄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저만해도 극빈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이면 살만합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흙수저라는 사실, 즉 부자집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심한 절망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은 열등감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열등감 때문에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사실을 안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열등감에 고통하는 사람을 위로하셨습니다. 제가 매우 가난하게 자랐고, 고등학교 때 신문배달을 했다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큰 위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고생을 조금도 안 하고 산 사람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만, 고생한 사람 얘기를 들으면 위로를 받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소망

예수님의 탄생은 사악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도전장입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최고의 윤리로 알고 살아가는 세상에 던진 하나님의 폭탄입니다. 그 폭탄은 조용하게 폭발했습니다. 하지만,

수저계급론에 좌절하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수 천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전할 미래에도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런 종류의 좌절은 계속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소망도 여전히 인류 역사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더욱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그분이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잃어버린 바 되었을 것입니다.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이 없고, 죄의 대속이 없으며, 용서가 없고, 구세주도 없을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셨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드린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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