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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Sungooja


[선구자 | 으로 보는 속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선으로 보는 구속의 역사는 교회에 관하여 문제성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정확한 그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도전이면서 제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출입하는 교인들이나 교회를 등진 사람들, 더욱이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까지도 한국 교회에 관해서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도 영적 기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개교회적으로, 혹은 기독교 단체나 교단들로부터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옥한흠 목사’와 그의 ‘목회자 갱신 운동’인데, 이를 두고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시도에 대해서 ‘무의미한 시도’라고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도들이 나타나게 된 동기가 한국 개신교의 성장 둔화 뿐만 아니라 감소 현상이 뚜렷해진 위기상황에서 나왔을 뿐더러 그마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보지 못하는 가운데 나온 근시안적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인들의 숫자가 70~80년대처럼 급속히 증가하는 상황으로 다시 반등한다면, 그들은 이 운동의 성공적 결과라고 자평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전 국민이 교회를 출석하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런 외적 성장은 더구나 절망적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 문제의 본질은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학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 교회 갱신을 부르짖는 운동에서 이 신학 문제를 그 핵심 주제로 다루는 처방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를 저질화시키는 번영주의, 기복주의, 무속화, 양적 팽창, 목회자들의 타락 및 윤리 부재, 마케팅 전략의 양적 부흥, 기업화 현상들은 바른 신학의 부재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이기 때문입니다.

암에 걸려 각종 질환으로 증상이 나타나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감성적 회개나 각성 운동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그것이 가능해졌다해도 하나님과의 문제는 여전히 최악의 관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이런 윤리적 혹은 도덕적 회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의 윤리인이나 도덕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될 수 있다면, 바울이 말한 사람의 전적 무능력이라는 진단은 거짓이 되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그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그 필요성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노력이나 행위로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기쁘시게 할 수 있다거나 그에게 나아가는 길에 긍정적인 요소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그리스도와 대속자에 대한 의존도는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유대교의 율법 준수 지상주의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긴장 관계를 유발시켰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 설교는 새로운 유대교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들의 설교를 정형화해 본다면, 다루는 본문에 나타나는 인물을 분석하여, 그들의 행동이나 사상을 지향 혹은 지양점으로 구분하여 교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 “왜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 사역이 필요한가?”라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라”, “하지 말라”라는 율법주의 교육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무시 혹은 제한했으며, 결국 유대인은 그들의 종교에서 그리스도를 몰아내고 죽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패망 원인을 여호와에 관한 신학의 무지에서 왔다고 진단했습니다. 그의 처방은 “여호와를 알라, 힘써서 알라!”였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사역이 무시되거나 약화한 ‘여호와의 종교’, 어떻게 그 종교의 존립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단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단순히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혹은 그리스도를 자처하거나 또는 윤리나 도덕적 잣대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은 기준이 아닙니다. 많은 이단들은 이런 기준 밖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세대주의나 근본주의 신학 체계는 문자 주의 성경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밖에 있는 철학적 교훈을 하는 설교에 대항해서 오직 성경만이 논의의 핵심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매우 보수적이며 복음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자적 성경해석을 지향하다가 전체 성경의 구조를 망가뜨리거나 해친다면, 성경주의 이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경으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왜곡시키는 일, 그것이 유대교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오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놀랍게도 성경 속에는 신적 섭리가 아니면 결코 있을 수 없이 잘 짜인 구조가 여실히 존재합니다. 성경에는 대, 중, 소의 문맥 구조가 있습니다. 이 구조는 철저하게 서로 의존적이며 하나의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 문맥은 중 문맥에 또 중 문맥은 대 문맥에 종속된 것입니다. 이런 문맥이 무시되거나 알지 못하고 어떤 성경 본문을 해석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목표나 뜻을 왜곡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른 신학이란 이렇게 존재하는 구조에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 의미를 봤을 때, 이 이단 규정에서 벗어날 교단과 목회자, 성도가 얼마나 있을까요? 여기 ‘선으로 보는 구속의 역사’는 이런 성경의 구조를 보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지에서 주어진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선구자‘라는 저희 모임의 타이틀 또한 ‘선으로 보는 구속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은 성경을 ‘에덴 역’에서 출발하는 구원 열차가 중요 경유지를 지나 목적지인 ‘새 예루살렘 역’에 도착하는 전 과정을 성경의 구조 속에서 드러내는 책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구속 역사의 모든 과정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구약의 모형에서 나오셔서 여러분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런 성경의 구속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신앙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는 과정이 절대 쉽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교단 절대 주의 관념과 교단 중심 복음관을 버리고, 오직 성경의 진리만을 찾아가는 첫걸음은 어렵기만 합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최대 난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내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난관을 극복하는 힘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만이 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안다” 주님의 양들은 이 진리이신 성령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음성을 알기에.

교회 소개

평택 두란노교회는 영적으로 혼란한 이 시대에 구속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최근 설교

선으로 보는 구속의 역사를 설교로 강의한 내용입니다. 깊이 있는 강해를 통해 구속의 은혜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구속사 성경 공부

평택 두란노교회 오후 예배는 평신도 중심으로 구속사 공부를 진행합니다. 현재는 유도순 목사님의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신구약 파노라마’가 교재입니다. 성경을 구속사로 깊이 있게 공부하기 원하는 분은 꼭 참석해 보시기 바랍니다.